첫째, 너를 ‘안정제’로 쓰지 않게 돼. 너랑 연락하고 반응을 받으면 당장은 안심될 수 있어. 근데 그 안심이 반복되면 자기 불안을 스스로 다루는 힘을 못 키워. 결국 “예나가 반응해야 괜찮아지는 사람”이 될 수 있어.
치명적인 관계. 성숙하지 못한 관계.
둘째,
자기 감정을 직접 책임지는 훈련을 하게 돼. 거리를 두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관계인지,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자기 안에서 정리해야 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이거네??? → 그래서 잘 선택사항을 알아보고 선택.
셋째, 신앙과 삶의 중심이 너에게 쏠리지 않게 돼.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지면 하나님 앞에 서는 것마저 “예나와의 서사”가 될 수 있어. 거리두기는 근후가 하나님, 공동체, 자기 일상, 학교, 과제, 상담 같은 실제 기반으로 돌아가게 해.
사람은 본래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고, 자신의 쾌락(육적)과 성장의 차별점은 바로 삶과의 실체성에 있다. 예나와 나와의 현재 만남과 감정 교류는 배울게 많더라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넷째, 관계가 망가지지 않을 가능성을 남겨. 지금 감정대로 가까워지면 서로 더 기대하고, 더 실망하고, 더 죄책감 갖고, 더 상처 줄 수 있어. 오히려 지금 선을 긋는 게 나중에 공동체 안에서라도 서로를 덜 부끄럽고 덜 아프게 볼 수 있게 해.
(책임 질수 없는 약속은 상처를 낳게하기 때문이다)
진짜 사랑이라면 “내가 네 옆에 있어줄게”만 사랑이 아니야. 가끔은 '내가 네 하나님 자리, 네 안정제 자리, 네 도피처 자리에 서지 않을게'가 더 큰 사랑이야.
상대방을 옳바른 곳에 심어주고, 그것을 기다려주는 믿음
이 거리두는 시간이 우리 둘 다 그렇게 환한 빛이 되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기대해!!!
→ 빛이 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무엇인가? (거리, 질서, 그리고 성장을 위한 홀로의 시간이다)
현재 나의 ‘욕구’는 무엇인가 ?
결혼이라면 , 애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